과거의 기술 상상이 오늘날의 기술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상상력이 결코 순간적인 환상이 아닌 축적된 인식의 구조였음을 말해준다. 11세기부터 14세기 사이의 중세 유럽은 기술적 실현이 어려웠던 시대였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이미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물, 비가시적 통신, 생명 모사 기계 같은 개념들을 집요하게 사유하고 도식화했다. 이러한 상상은 실체 없는 신비의 기록이 아니라, 당대의 존재론과 자연철학, 신학과 결합된 기술적 투영이었다. 이처럼 중세는 기술을 단지 물질의 조작이 아닌 세계의 질서를 모방하고 확장하는 매개로 바라보았고, 바로 그 시각이 현대 기술과 깊은 지점에서 조우하고 있다.현재의 기술은 물리적으로는 압도적으로 진보했지만, 철학적으로는 그 상상의 구조를 되풀이하고 있다...